대인(大人) 흉내 내기 (기사출처: 일간스포츠)

2009.01.24·by 서병익
7,825
누군가 물었다.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이 어떻게 다릅니까?"
 
누구나 대인이 되고 싶어 하는데, 과연 누가 대인일까. 대인은 소인과 격(格)이 다른 것인가.
 
평생 콩나물장사를 하면서 모은 10억을 선뜻 기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금으로 몇 푼의 장학금을 대납하고 생색을 내는 사람도 있다. 건물 경비원이면서도 건물 주인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인이면서도 경비원보다 못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봐서는 적어도 지위와는 관계가 없다.
 
대인과 소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마치 스무고개라도 푸는 냥, 주변에서 여러 가지 답이 올라왔다.
 
"대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소인은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마음이 넓으면 대인입니다."
 
"남의 탓을 하면 소인이고, 자기 탓을 하면 대인입니다."
 
나는 "목욕탕에 가보면 압니다"하고 답했다. 알몸으로 들어가는 목욕탕을 생각했는지 별별 상상을 다 하는 것 같았다."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초등학생 이상이면 대인, 미만이면 소인입니다." 물론 농담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대인과 소인을 구별하는 요령 또한 이에 못지않게 간단하다. 사서삼경엔 소인은 주인과 하인을 구별하고, 대인은 구별이 없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하늘 아래 모든 게 평등하다고 강조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부처와 중생이 어떻게 다른가'라고 물었을 때, 중생은 부처와 중생을 따로 구분하지만 부처는 두두 물물 모든 것이 부처라고 답했다. 말의 표현은 모두 다를지라도 뜻?한가지로 흐른다. 나와 너를 구분하면 소인이요, 분별심이 없이 모두 '나'이면 대인이라는 것.
 
말로는 대인과 소인을 구분하는 요령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 대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대인 같으면서도 소인 같은 사람이 있고, 반대로 소인 같으면서도 대인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의 한 의사는 학력도 좋고 치료도 잘해 촉망받는 의사였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함부로 하대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의사는 마음속으로 '나 때문에 환자가 생명을 건졌으니 나는 환자의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들에게 늘 대접받기를 원했기에 환자들의 원성을 샀다. 반면 시골의 한 의사는 환자들에게 칭찬이 자자했다. '생명은 하늘의 명령이고, 나는 환자의 병을 돌볼 뿐'이라며 '언젠가 나와 내 가족들도 저 환자들처럼 될 것인데 미리 품앗이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근근이 살면서도 조상을 극진히 받드는 사람이 있고, 떵떵거리고 살면서도 대충 얼버무리려는 사람이 있다. 내 주변만 해도 계약직 월급 110만원을 받으면서도 남들에게 음료수를 사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수십억을 주무르면서도 늘 찡그리는 사람이 있다. 흐르는 게 돈인데, 모두 자기 소유라고 마음에 붙잡아두니 찡그린 얼굴에 마음 편할 날이 있을까.
 
'금지타사(今之他事)는 후지아사(後之我事)'라 했다. 오늘의 남의 일이 내일의 내일이 된다는 뜻이다. 대인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오늘은 상갓집을 방문했지만, 내일은 내가 영정 사진의 주인공이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남의 일을 내일처럼 하는 사람이야말로 대인이다.
 
끝도 처음 같이, 겉도 속과 같이, 그리고 남도 나와 같이 한다면, 각박하다는 요즘도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대인은 못되더라도 대인 흉내는 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퍼옴......기사출처: 일간스포츠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Comments0

결제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