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흥망성쇠(1) 한국경제신문에서 퍼옴

2009.04.22·by 서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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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집단지성 시대

작은 개미 한 마리의 힘은 미미하다. 개구리가 달려들어 꿀꺽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개미가 모여 집단을 이루면 상황은 달라진다. 작은 애벌레에서부터 커다란 네발짐승까지 여왕개미, 일개미, 병정개미들로 나뉘어 수천수만 마리가 하나의 몸처럼 행동하는 개미 집단에 걸리면 당해낼 개체가 없을 정도다. 이처럼 개미나 벌처럼 집단의 능력이 개인 능력의 산술적 총합을 능가하는 능력을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라한다.

현대를 바야흐로 집단지성 시대라고들 한다. 한 명의 천재보다 평범한 천 명이 똑똑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뭉쳐져 하나의 몸 같이 움직이는 기업(회사)은 집단지성의 대표적 본보기다. 새로운 집단지성이 등장했으니 바로 네티즌이다. 촛불시위에서 보듯 막강한 지식정보로 무장한 개미들의 힘은 소수 전문가들의 지성을 압도하여 한 국가를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집단지성의 흐름을 먼저 간파하고 대처하는 자야말로 시대의 주인공 자격이 있다. 그래서 미국 정보통신의 흥망사는 집단지성의 한계와 미래 진화의 방향을 점치게 하는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

미국의 최대 유무선 통신회사 AT&T는 80년대 초반, 한때 38만 명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대기업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국가보다 기업이 우선한다.’고 선언하며 다국적기업의 대명사로 부상한 AT&T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 누구도 AT&T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AT&T의 아성이 흔들렸다. 그 경쟁자는 거대한 군수공장이나 막강한 자동차회사가 아니었다.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전자기기 회사였다. 컴퓨터·정보기기 제조업체인 애플사와 IBM이었다.

통신 맹주의 세대교체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무용 컴퓨터의 폭발적 수요로 애플사와 IBM은 급성장했다. AT&T는 노동집약적이었던 반면, 애플과 IBM은 지식, 정보 집약적이었다. 애플과 IBM은 서로 경쟁하며 사세를 늘렸다. 거대한 AT&T와 IBM와의 자리바꿈은 지식정보시대로의 본격적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회사 구성원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컴퓨터 회사에서는 인간의 근력보다 새로운 정보로 무장한 연구원들이 더 우대받았다.

2. 하드웨어 제국의 몰락

컴퓨터 라이벌 애플과 IBM간의 한판은 숙명적이었다. 애플과 IBM의 운명이 갈린 승부처는 리더의 선택이었다. 애플은 CEO로 ‘스컬리’를 영입하여 10년간 애플사의 선장을 맡긴다. 스컬리의 경영철학은 이전 몸담았던 콜라회사와 같은 군대식 직계조직이 그 뼈대였다. 거대한 몸집의 기업이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로 신속하게 움직이길 원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애플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욱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발전과 소비자 기호를 따라잡기엔 너무 덩치가 컸다. 아무리 빠른 직계조직이라도 급변하는 시장과 현재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는 창의력과 신속성이 떨어졌다.

반면 IBM은 시행착오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하부에 대폭 권한을 이양, 다변화된 서비스 조직으로 꾸준히 탈바꿈했다. 초반에 밀렸던 IBM은 다시 미국 통신시장의 선두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하지만 IBM의 빛나는 영예는 너무도 짧았다. 아성을 무너뜨린 자는 바로 빌게이츠였다. 집단지성에 빛나는 IBM이 왜 정보통신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 맥없이 무릎을 꿇어야했을까.

8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바람이 불었다. 회사가 아닌 한 사람마다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수요는 폭발적이었지만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평범한 개인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번거롭고 어렵다는 것. IBM은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사항이라며 너무 쉽게 얼버무렸다. 컴퓨터를 본래 고급 정보와 전문가의 전유물로 여기고, 소비자들은 긴 시간의 숙련이 필요하다고 뒷짐을 지었다. 보다 빠르고 경제적인 모델을 생산하여 친절한 애프터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빌게이츠의 생각은 달랐다. 컴퓨터의 원리를 모르더라도 마우스 몇 번 누르면 전화기처럼 간단히 PC를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윈도우’운영체계였다. 몇 번 클릭만으로 누구나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마술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IBM이 하드웨어의 효율성에 집중하는 사이에 MS는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게임이나 사무용 양식정도로 얕잡아 생각하던 때다. 어떠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건 자신들의 하드웨어를 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IBM의 결단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빌게이츠는 틈날 때마다 ‘소프트웨어’를 외치고 다녔다.

드디어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압도한 것이다. 몇 세기 전만해도 글을 알고 규정을 아는 자가 권세가 계급이었지만, 이제 도서산간의 어린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든 고급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반세기전만 해도 감히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대 정보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3. 네티즌 집단지성의 양산

MS의 윈도우는 예상치 못한 지식정보혁명을 가져왔다. 국경 없는 새로운 종족 ‘네티즌’을 탄생시켰다. 네티즌들은 무형의 사이버 공간에서 인터넷 서핑으로 얻은 무한 지식정보로 무장하며, 각자의 취향에 따라 끼리끼리 동호회를 만들어 집단지성을 양산시켰다.

전봇대를 설치하고 전화기 설치하던 거대한 AT&T 정보통신회사가 책상위의 작은 상자(PC)로, 다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보로 마이크로화했다. 윈도우란 뜻 그대로 PC앞에 세상이 펼쳐져 세상을 보는 창이 열린 것이다.

MS의 아성은 영원할까. 포스트 빌게이츠 다음은 누구일까. 너무 성급한 추론일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인터넷 포털 ‘구글(Google)’을 꼽고 있다. MS의 문제점은 정보의 바다가 너무 넓고 깊어 네티즌이 자칫 정보의 바다에 익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자기가 필요한 정보만을 단시간에 족집게처럼 골라내는 인터넷 ‘검색엔진’의 선두주자가 구글이었다.

검색엔진의 등장은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성의 무한 분화를 촉진시켰다. 사무용 컴퓨터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1인 1국가로 분화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소프트웨어를 외친 빌게이츠조차 신형 검색엔진의 등장에 왕좌를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 정보통신의 흥망사를 곰곰이 살펴보면, 세상은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집단지성의 허상과 실상, 한계와 향후 발전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집단지성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무게중심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다음주에 완결편이 이어집니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차길진의 혼테크 재테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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