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 Baez를 추억하며...

2020.06.26·by 파소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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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터구님의 숙제를 미루었다가 이제라도 할 수 있게 되어 여간 다행으로 여기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영어 이름에 흔히 작은 실수를 하곤 합니다.

서대표님과도 통화에서 말씀드린 바 있지만 국내 유명 여가수의 이름도 사실은 남성명사를 가져다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냥 사용하는게 조금은 묘합니다.

Joan Baez를 존바에즈로 호칭되는 것이 아마도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던 70년대 후반에서 80년 대에 라디오 DJ라 그렇게 부른게 아닌가...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Joan은 여성이름에 사용되는 명사입니다. 존이 아닌 조안이라고 불러줘야겠지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느 것처럼,

조안바에즈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에서 멕시코 출신의 Albert Vinicio Baez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Joan Bridge Baez의 세 딸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미국의 포크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로 멕시코와 스코틀랜드의 혼혈인이죠.

그녀가 반전 및 인권운동가로 일생을 살게된 배경엔 아마도 핵무기 제조에 반대하는 물리학자였던 그녀의 멕시코계 아버지의 영향이 컷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1959년에 비로소 정식으로 노래를 시작한 바에즈는 The Newport Folk Festival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시작하였고, 그 당시 내로라하는 음반 제작사들의 계약 요청에도 불구하고 1960년 포크 전문 레이블인 Vanguard Recording Society와 장기계약을 맺고 음반을 출시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그녀만의 고집스런 자기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그녀가 데뷔 2년 후, 1961년에 뉴욕에서 Bob Dylan과 함께 전국순회공연을 하면서 흑인들의 인권향상을 위한 운동과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전개하면서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반전시위에 가담해서 체포당하기까지 합니다.

1968년 반전운동가인 David Harris와 결혼한 그녀는 남편이 비폭력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양심적병역거부로 투옥되자 The Woodstock Festival에 참여하는 등 반전운동을 더욱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과 그 후에 Joan Baez는 반전가수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는데요. 특히 중남미 국가에서 CIA가 지원하는 쿠데타에 대해서는 매우 격렬하고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광화문광장에서의 일부 가수들의 공연은 부끄러운 정도입니다.

수많은 대중들을 앞에 놓고 무반주로 노래를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은 지금에서도 깊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런 활동을 이어가다가 그녀는 Dr. Martin Luther King와 함께 비밀리에 활동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녀의 신념으로 투옥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구요. 마틴 루터 킹목사의 그 유명한 'I have a Dream...'이란 연설에 앞서 그녀가 불렀던 'We shall overcome'이란 곡은 그 연설이 어떤 지향점을 보여줄지를 나타내 주는 명연주이고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배경 음악으로 바로 그 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인권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세계 만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Joan Baez의 곡 가운데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라는 곡명이 떠오릅니다.

제가 아는 최고의 여성 반전가수인 Joan Baez는 1960대의 활동할 때의 긴 생머리의 모습에서 2000년 초의 활동 모습은 짧게 자른 머리에 웨이브진 헤어스타일로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옛시절보다 더욱 권위있고 품격있는 목소리와 모습에 탄성을 자아내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Joan Baez의 활동에도 변화를 보여 전통 포크송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 대표적인 곡이 1975년에 기존 뱅가드 음반사가 아닌 A&M을 통하여 발매한 'Diamonds & Rust'라는 곡입니다. 

초반 유명했던 곡들의 많은 곡들의 작사에 관여를 깊게 했었는데 그 대표적인 곡들이 'Diamonds & Rust'(Bob Dylan과의 불운한 로맨스를 그린 향수 어린곡이죠), 'Sweet Sir Galahad'(언니 Mimi Farina의 재혼을 그린 곡) 등이 있죠. 특히 'Diamonds & Rust'곡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그녀는 8장의 골드앨범(Joan Baez. 1960, Joan Baez,Volume Two 1961, Joan Baez in Concert. 1962, Any Day Now. 1968, Woodstock, Blessed Are... 1971, Diamonds & Rust. 1975, Live Europe. 1983)과 골드 싱글(The Night Thery Drove Old Dixie Down. 1971)이 있습니다.

저는 위의 골드앨범 가운데 절반정도를 소유하고 있네요.

터너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수주 동안 Joan Baez 앨범을 듣고 또 들으면서 싱어송라이터?

저는 그냥 서정시인 같다고 느껴집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새 멜로디는 사라지고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목소리만이 읆조리는 듯 귓가에 머물러 있답니다.

80년대 음악다방에서 판을 올릴 수 없었던 그 Joan Baez가 이젠 저의 거실에서 정성을 다해 들려주는 이 시간, 역시 세상은 건강하게 오래 살만 합니다.

다시 이 공간을 빌어 터너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대표님께 누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격래해주신 서대표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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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6

  • 서병익 2020.06.27 11:50

    영어권 사는 사람들 공부하려면 힘들 것 같아요....

    아 참 우리가 힘드나.....^^

     

    같은 문자인데도 배열에 따라 상대에 따라 발음이 다르니........ 원 

  • 파소스2 2020.06.28 00:47
    제 실력으로도 35년을 외국회사에서 버텼으니까 힘내셔도 됩니다.
    우린 영어를 그래도 어느 정돈 하는데 그 친구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잖아요!
    그러면 누가 불편하겠어요. ㅎ ㅠ
    아닌가요?
  • 터구 2020.07.01 07:39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조안 바에즈는 그냥 서정적 가수로만 알았는데 반전운동도 열심히 했군요.
    파소스님인 영어도 잘하시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셔서, 항상 부럽습니다. ^^ 터구 올림
  • 파소스2 2020.07.01 15:14
    아닙니다!
    들어보셨는지요? '생계형영어'라고...
    딱 그 수준입니다.
    음악은 생활이기에 그냥 좋아라 합니다.
  • PEUS 2020.07.13 12:17

    Joan Baez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저도 고등학교2학년때 가출?해 부산서 고속버스 타고 고향 경주로 내려가 그곳에 한창 성업중이었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밤새 에릭크랩튼, 아바, 엘튼존 등등... 팝송듣다 오곤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소개 감사드립니다.!^^

     

  • 파소스2 2020.07.16 11:02
    경주에도 세시봉이 있었군요.
    서울에선 반찬없이 밥만 도시락 싸서 갖고 가서 음악도 듣고 노래도 듣고 근처 국물만 판매하는 곳에서 국물만 사서 식사를 때우곤 했었네요.
    에릭클랩톤의 기타연주는 그 때나 지금이나 최고입니다. 물론 동시대의 지미핸드릭스가 있었지만 추구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으니까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락앤롤에 흠뻑 빠져서 에릭클랩톤보단 지미핸드릭스나 그룹 레인보우와 딥퍼플의 리더였던 리치블랙모어를 너무도 좋아했었습니다.
    대학 졸업 때 즈음되어서는 저도 모르게 에릭클랩톤의 LP들을 보유하게 되었지만요.
    아련한 추억 속, 학비 마련을 위한 생계형 알바로 DJ를 했던 가난했지만 낭만이 있었던 그 시절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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