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카투스 -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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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5·by 전명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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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08년 가을에 입문한 새내기입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무작정 용산의 모 오디오숍에서 1시간 정도 시청을 하고, '기계'를 들였지요. 마란츠PM-7001, SA-7001, Q어쿠스틱 1050이 그렇게 시작한 첫 시스템입니다. 그 후에 오디오에 관한 이런저런 책도 읽게 되고, 실용오디오를 포함해 몇몇의 오디오 사이트도 알게 되어 자주 접속했습니다. 그러다 진공관 앰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주위에 오디오 이력이 있는 사람들 집에도 드나들었지요. 막귀긴 하지만 귀동냥을 하다보니, 진공관 앰프에 대한 동경은 날로 커졌습니다. 몇 가지 모델을 집중적으로 보던 중, 오디오잡지에서 서병익오디오 광고를 봤습니다.
과문한 까닭에 처음 보는 회사(브랜드)라서 홈페이지부터 접속을 했지요. 여러가지 기술칼럼도 읽었고, 전화 통화도 해 보면서, 까닭 모를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올해 봄날, 4월의 둘째 주에 청주를 갔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강원도 강릉이라 3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고, 사장님의 시청실에서 청음을 했습니다.
당시 살고 싶은 여자랑 같이 갔는데, 말하자면 혼수를 보러 간 셈이지요.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궁금한 것에 대해 여쭈어 보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작 기간으로 한 달을 말씀하셨는데, 그보다는 조금 일찍 도착했지요. 7개월 남짓 저의 첫 진공관 앰프 델리카투스와 함께 한 느낌을 적어 보겠습니다. 세상의 사용기가 다 그렇듯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헤아려 주십시오.
1. 장점
-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맑고 깨끗한 소리.
→ 출력관인 EL84의 특성이겠으나 - 같은 출력관을 쓰는 다른 제품과 비교 시청은 안 했음 - 중고음이 명확하고 깔끔합니다. 저를 포함해 진공관 앰프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갖는 '부드럽고 따뜻한, 포근한 소리'라기보다는 맑고 깨끗한 소리입니다. A급 증폭이라 그런지 특히 고음이 아주 좋아, 재즈도 현악 선율도 잘 살려줍니다.
- 가격 대비 훌륭한 소리
→ 앰프가 소리 좋은 것이야 '당연'한 것이겠으나, 대부분의 입문자들이 그렇듯이 가격과 '타협'하는 순간 좋은 소리를 만날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지요. 사람들마다 오디오 시작하는 예산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개 200만 원 안팎이라 본다면, 가격 대비 소리가 참말 출중합니다.
물론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뜻을 잘 알기에, 제작자이신 사장님과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솔직히' 쓰고 싶었습니다. 자본에서 자유로운 것이 매체에서 하는 비평보다 사용자가 쓰는 글일 테니까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작년에 환율이 오른 후에 덕 좀 봤지요. 그러나 가격을 떠나서 정말 제가 만든 앰프가 내는 소리에 대해 자신이 있습니다." 하는 서병익 사장님의 말씀이 진정 옳다는 것을 쓰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 스피커 핸들링이 뛰어남
→ 델리카투스는 출력 10W 소출력 앰프입니다. 그렇지만 스피커를 장악하는 힘은 제가 써 봤던 어떤 앰프보다 우수합니다. 대개 입문기를 써 봤으니, 적절한 비교가 될 지 모르겠으나, 마란츠 PM-7001, 알펙스 테크닉스 SU-V11D, 마란츠 SR-2000 등인데, 모델별로 특색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스피커(Q-어쿠스틱스 1050)의 저음 컨트롤 능력이 떨어져 저음이 벙벙대는 느낌이었고 따라서 볼륨을 8시 이상 올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델리카투스는 그런 현상이 없고, 10시~11시까지 올려도 소리 잘 내 줍니다. 앰프로 소리가 바뀐다는 말을 델리카투스를 써 보며 확실히 느꼈습니다.
- 확실한 사후관리
→ 사용하다 궁금한 것이 있어 전화로 여쭈어 보면, 늘 친절하게 받아주십니다. 이름도 저장해 두셨는지, 굳이 제 이름을 말씀드릴 필요도 없고요. 사장님의 환한 인상이 떠 오르게 전화를 받으십니다. 아직까진 AS받을 일도 없지만, 이런 믿음은 사후관리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을 일소시키지요. 더구나 저처럼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에게는요.
2. 개선(?)점
장점을 언급하고 개선점을 쓰는 게 상충되는 것 같아 좀 이상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솔직하게 쓰고 싶으니까 헤아려 주십시오. 그리고 이건 개선점이라 했지만, 제가 이 분야를 몰라서 하는 것이니 그냥 참고만 하시면 될 듯합니다. 사장님.
- 출력관 방향을 조금 조절하시면 어떨까요?
→ 사장님께선 진공관을 '소리'로만 접근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포함해 진공관 앰프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외형과 불빛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류관은 불빛이 잘 보이고 또렷한데, 출력관은 정면에서는 안 보입니다. 약 45도 측면에서 봐야 잘 보이는데, 소켓 배열할 때 조정을 할 수 없는 것인지요? 이를테면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들을 때, 정면에서 불이 잘 보였으면 더 좋겠습니다.
- 판넬과 케이스 디자인에 대해
→ 사장님께서는 가격과 제품 라인업을 염두해 두시고, 케이스 디자인을 고르셨겠지요?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은 하지만, 지금과는 약간의 차이를 두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보이스우드를 포함해 목공 업체에 의뢰해 나무로 된 베이스를 둘러 보는 건 어떨까요? 예전에 턴테이블 꾸미듯이 말이죠. 아니면 전면 판넬말고 앰프 몸체처럼 검은색 도장은 어떻고요? 현재 디자인은 마치 키트를 조립한 느낌이 강합니다. 적어도 디자인에서는요. 이번에 같은 가격에 MK2버전을 발표하셨던데, MK3버전에서는 가능하시다면 한 번 고려해 보셔요.
이렇게 긴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제 마음이 시켰네요. 오늘은 날도 날이고 해서, harmonia mundi에서 발매한 오라토리오를 듣고 있습니다. 장중함이 느껴지는 연주와 녹음을 델리카투스가 잘 내주고 있네요. 故 이태석 신부님의 책을 꺼내 읽어야겠습니다.
서병익 사장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앰프 만들어 주셔서, 사람들이 음악 듣는 즐거움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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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익 2011.10.21 20:02